지난달 27일 새벽 6시30분(현지시각) 필리핀 민도로 섬 칼라판 시의 리비스 지역에 때아닌 소동이 일어났다.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고,지프니와 오토바이 등이 사람을 싣고 계속 모여들었다. 남루한 행색,얼핏 봐도 사회 속에서 그다지 혜택을 받고 사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픈 몸을 내보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 상태이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며 17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실 수조차 없습니다.”
한동안 지구촌 이웃을 생각하게 하는 이메일이 회자된 적이 있다. 60억명을 훨씬 넘어선 지구촌 식구들의 각종 통계를 100명에 대입시킨 글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통계는 곧 기억 뒤편으로 사라진다.
지구촌의 비참한 현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30억명이 하루 2600원 미만,이중 3분의1은 1300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끼의 식사로 연명하며,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의료혜택은 꿈에서의 일이다. 그 대부분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필리핀 역시 심각한 부익부 빈익빈의 상황을 안고 있다. 16세기 이후 에스파니아와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빼앗긴 역사. 한반도의 1.3배 크기의 국토를 가졌지만 섬과 산지로 이뤄져 고른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힘들고,오랜 독재정치에 따른 부의 집중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6일 27명의 봉사팀이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에 올랐다.그들의 가방에는 약과 의료기구들로 가득했다. 성산 장기려기념사업회가 서울 중계충성교회 의료선교부와 경북포항 선린병원 의료봉사팀과 함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중계충성교회 의료선교팀은 단장 문순홍 박사를 비롯,김병의 소아과 의사와 박상현 이비인후과 의사,중·고·대학생 직장인 등 22명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방학기간의 마지막을,직장인은 어렵사리 휴가를 얻은 상태였다. 선린병원에서는 우현경 외과과장과 김기환 정형외과 의사,정봉란 국인혜 간호사 등 4명이 참여했다.
마닐라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30분(이하 현지시각). 의료팀은 곧바로 바탕가스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바탕가스에 도착하자마자 의료팀은 다시 민도로 섬으로 가는 페리에 올랐다.민도로 섬은 필리핀에서 7번째로 큰 섬으로 수도 마닐라가 있는 루손 섬 바로 아래 있다. 인구는 100여만명에 이른다. 이 중 산지족은 6개 언어부족으로 구분되며 대략 20만명으로 추산한다.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의존하고 있다.
민도로 섬 칼라판 시에 도착한 시간은 27일 새벽 6시30분. 10시간에 걸친 여행 끝에 사역지인 칼라판시 리비스선교센터(김귀환 선교사)에 도착했다.그러나 쉴 여유가 없었다.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의료팀은 정신없이 약을 챙기고 진료소를 마련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늘어갔다. 의료팀은 교회 밖 마당에 천막을 치고 타갈로그 어로 더빙된 영화 ‘예수’를 상영했다.
잠깐 동안의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진료와 투약에 매달렸다. 그렇게 진료한 사람은 모두 599명.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와 몰려든 사람들,시간에 쫓기는 바쁜 손놀림 속에서도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주수현(14·불암중2) 양은 “의사가 돼 선교사로 나설 꿈을 갖고 있다”며 “힘들기도 했지만 사랑을 전한다는 생각에 피곤을 잊었다”고 말했다.
28일 진료는 칼라판 시에서 서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빅토리아 시에서 진행됐다. 이 곳의 사정도 칼라판 시와 마찬가지였다. 불결한 위생환경 탓에 피부질환 환자들이 많았고,저급수인 물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환자들이 많았다. 영양결핍 상태인 어린이들과 가벼운 찰과상도 치료못한 환자들도 부지기수였다.빅토리아 시에서는 652명이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갔다. 김아람(20·서울여대2) 씨는 “한국에서 막연하게 생각할 때와 너무 다른 현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오시혁(20·단국대 의대2) 씨는 “힘든 첫 해외나들이였지만 감사했다”며 “사랑과 헌신,인술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짧은 기간의 봉사였지만 의료팀원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방법과 넓은 꿈을 설정하고 있었다. 홍윤아(27·학원강사) 씨는 “이번 봉사기간을 통해 같은 생각과 뜻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함께 일할 수 있어 감사했다”며 “의학 공부를 시작해 의료선교사로 나설 계획을 구체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의료봉사팀은 민도로섬을 떠나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이들이 우리의 얼굴을 잊을지라도,우리 역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들을 잊을지라도 예수님의 사랑만은 남게 하소서.혹시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신앙 안에서 서로를 안게 하소서.”